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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사회에 대한 편향된 시각 고치는 데 큰 도움"

북한의 실상을 생생한 사진 및 동영상을 통해 접한 한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6일 오전 11시. 가든그로브 동보성 식당에서는 최근 북한 취재를 다녀온 본지 이원영 기자(OC총국장)의 북한 설명회가 열렸다. 150여명이 참석한 이날 설명회는 민주평통 오렌지.샌디에이고 지역협의회(이하 OC평통.회장 한광성)가 주최하고 OC건강정보센터(소장 웬디 유) 미주탈북자지원회가 공동주관한 탈북동포학생 장학금 전달식에 앞서 마련됐다. LA에서 행사장을 찾은 박신화씨는 "긍정적인 남북 간 교류의 장을 중앙일보가 마련했다는 것에 큰 자부심과 기쁨을 느꼈다. 우리 재외동포들이 통일을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 서영민(LA.48)씨는 "북한의 실상을 이렇게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될 줄 상상도 못했고 북한의 달라진 캐치프레이즈와 개방적인 모습들을 보면서 통일이 그리 멀지 않음을 느끼게 했다"며 "오늘 본 영상들이 여러 사람에게 보급되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롱비치에 거주하는 장재철씨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북한 관련 영상 중 가장 현실적이고 생생했다"며 "앞으로 북한이 전국 어디든지 자신있게 보여줄 수 있는 그날을 기다려본다"고 말했다. 이승해 재향군인회 미서부지회 OC분회 회장은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북한의 실상이 너무도 많다"며 "앞으로 중앙일보가 북한을 바로 알도록 노력하는 선구적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피터 한(평통간사.부동산업)씨는 "그동안 북한 관련 뉴스는 부정적인 것 일변도여서 북한을 균형있는 시각으로 바라보는데 한계가 있었는데 편향된 시각을 바로 잡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면서 "이것이 통포사회의 통일 열기가 확산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10년 전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는 샬롬합창단 이영희 단장은 "평양이 예전의 모습과는 너무 많이 변했다. 북한이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동포로서 흐뭇하다"고 피력했다. 강연에 나선 이원영 기자는 "우리가 그동안 흔히 접해오던 부정적인 북한 뉴스보다는 편향된 시각 때문에 보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동족의 모습을 전해주기 위해 노력했다"며 "앞으로 폭넓은 시각을 가진 해외동포들이 통일에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설명회 후에는 미주에 거주하는 탈북동포 자녀 13명에게 1인당 500달러씩의 장학금이 전달됐다. 12세부터 52세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장학생들은 중학교 일반대 간호대 신학대 대학원 및 박사과정까지 다양한 교육과정에 재학 중이다. 장학생 김모(33)씨는 "90년대 초반 경제난으로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린 시기를 겪고 99년 탈북한 나로서는 오늘 이원영 기자가 보여준 북한의 모습이 딴 세상처럼 보였다"며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고향땅의 변화된 모습을 감상하고 장학금까지 받으니 정말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행사는 참가자들의 '우리의 소원은 통일' '나의 살던 고향' '징글벨' 등 합창으로 막을 내렸다. 글.사진=김정균 기자 kyun8106@koreadaily.com (*본 기사에서는 '탈북자' 대신 '탈북동포'로 표기합니다.)

2012-12-06

[신북한을 가다-8. 열차로 압록강 건너다] "통일 되면 만납시다" 여성 역무원과 아쉬운 작별

평양에서 열차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출국하는 코스는 뜻밖의 수확이었다. 우리 일행 9명 모두 열차를 타고 싶다고 북측 관계자에게 요청을 해논 상태였지만 자리가 없어 출국 며칠 전까지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국제열차는 일주일에 두 번밖에 없는데다 그것도 객차가 몇 량 되지 않아 좌석을 잡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었다. 시골 풍경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데다 창밖 동영상을 촬영하기에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간절히 원했다. 다행히 좌석이 확보되었다는 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안내원에게 "열차 타고 가면서 동영상 촬영할 수 있나"고 물었더니 "글쎄" 하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시설 좋은 평양에 비해 낙후된 시골 도시와 농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데 사진 촬영을 허용할까 싶었다. 결과적으론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국제열차 칸은 문이 없는 방처럼 나눠져 있었고 한 방에는 마주 보고 3층 침대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한 방에 6명씩 들어가는 구조였다. 둘러보았더니 유럽 여행객도 보이고 중국 관광객들이 많았다. 돌아간다는 북한 유학생 외교관들도 있었다. 기차가 평양을 벗어나자 정겨운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막 추수를 끝낸 들녘이 넓게 퍼져 있다. 멀리는 산기슭에 촌가가 보이고 추수 뒷마무리를 하는 농부들도 보인다. 군데군데 내 어린 시절 미꾸라지를 잡던 개울과 똑같이 생긴 개천이 흐르고 자그마한 다리도 정겹다.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아이들도 보인다. 북녘의 평양과 시골의 모습은 극명하게 대비됐다. 도시와 시골이 빠르게 닮아가는 한국의 지방과는 달리 시골은 시골이었다. 남한 농촌에는 으악스런 콘크리트 덩어리 아파트가 들어서 시골 경관을 해치고 있는 것과 대비돼 마음에 들었다. 다만 연료 탓인지 민둥산이 많아 안타까웠다. 농가는 많이 낡아보였지만 야트막한 산구릉과 시골스럽게 잘 어울렸다. 중국으로 돌아가는 중이라는 북한 유학생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쭉 보니 시골에 아파트 같은 게 잘 안보인다." 이 학생은 "시골은 시골다워야지요. 우리 조국에서는 농촌에 아파트 같은 거 짓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말을 내놨다. 실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말주변은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국의 반쪽을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에 일행 모두는 무척 상기된 표정이 역력했다. 이북이 고향인 한 명은 농촌 풍경을 보며 "야 참~ 좋다"를 연발했다. 나이가 지긋한 이들은 어린 시절 고향 정취를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는 듯했다. 오전 10시 10분에 평양을 출발한 열차는 오후 3시 반 신의주에 도착하기까지 대여섯 개 역에 정차했다. 역 주변으로 보이는 소도시 풍경과 열차를 타고 내리는 북녘 동포들의 차림새에서 우리들도 익히 경험했던 지난 날의 '가난'이 묻어났다. 40 50층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며 발전하는 평양과는 대조적이었다. 남한도 그랬듯 개발의 도시 집중화가 북한에서도 뚜렷했다. 맞은 편 좌석은 세련된 차림의 중년 여성이 앉았다. 우리들이 감흥에 젖어 맥주를 마시며 떠들어대는 모습을 빙긋이 웃으며 지켜보더니 "선생님들 너무 흥이 좋으십니다"고 했다. 중동 쪽에서 일하는 북한 사업가의 부인인데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중이라 했다. 다섯 시간 정도 걸려 신의주에 도착했다. 압록강만 건너면 중국 단둥이다. 신의주에서는 출국 세관검사를 하느라 2시간 정도 정차했다. 멋진 정복 차림의 여성 검사원이 다가와 "잠깐 짐 검사 하겠습니다"고 했다. 내 트렁크를 들여다보던 그녀가 책을 꺼내더니 묻는다. "이게 무슨 책입니까" "아 내가 읽으려고 가져왔던 한의학 관련 책이오." "아 그렇습니까." 책 속의 내용을 유심히 살핀다. "왜 그렇게 자세히 봐요? 그런 데 관심 있어요?" "제가 고려의학에 관심이 많단 말입니다." "그래요 그럼 그거 가져요. 난 또 사면 되니까." 여검사원은 반색하며 "정말입니까. 그럼 수표를 해주셔야죠." 북에서는 '사인'을 '수표'라 부른다. 통일 되면 미국에 꼭 놀러오라며 주소도 적어 주었다. "그쪽도 나한테 수표해줘야지요." 나의 제안에 이 여성은 이름과 전화번호를 내 수첩에 적어 주었다. "다음에 또 오시면 연락하십시오." 우리 일행은 나와 이 여성의 짧은 교제(?)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압록강을 건너자 고층빌딩 숲을 이룬 중국 단둥에 도착했다. 강 건너자 너무도 다른 모습 애잔했다. 단둥의 현대시설에 편안함을 느낄 겨를도 잠시 말이 안 통해 진땀을 빼야 했다. 편리한 시설이지만 말 안통하는 중국 가난하지만 말 통했던 북녘땅 기분이 묘했다.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수표'를 해줬던 북녘 여성에게 굿바이 전화를 돌렸다. 전화국 녹음 음성이 들린다. "지금 찾는 그런 번호는 없습네다. 다시 알아봐 주십시오." 국제전화가 안되는 것인지 가짜 전화번호였는지 아직 모른다. 평양=이원영 기자

2012-11-25

['新북한을 가다'-7, 속속 들어서는 문화편의 시설] 박근혜가 김정일에 선물한 건 '도자기 보석함'

입구부터 위용에 압도당할 정도였다. 평양 시내에서 버스로 20여분 달려 도착한 룡악산 기슭의 '국가선물관'. 올해 8월 개관한 이 건물은 부지 29만 평방미터 건평 6500 평방미터에 세워진 4층짜리 대리석 건물. 여성 안내원은 "해방 후부터 오늘날까지 북과 남 해외동포 인민들이 우리 지도자들에게 올린 각종 진기한 선물들을 보존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양 박물관들은 다른 나라에서 뺏어오거나 돈을 주고 사들인 것들을 전시하는데 우리처럼 지도자에게 자발적으로 바친 선물을 전 인민들이 향유하도록 전시한 나라는 유일하다"고 했다.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됐다. 들어설 때는 덧신을 신게 했다. 안쪽 중앙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거대한 입상이 서 있었다. 뒤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조명은 엄청난 아우라를 빚어냈다. 이 건물에는 각종 선물 2만 1000여 점이 보관되어 있으며 이 중 81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과 해외의 통일운동권 단체 및 개인들이 보낸 선물들도 많았다. 남쪽에서 온 선물만 대략 600여점에 달한다고 했다. 특히 한국의 역대 대통령과 기업 총수들이 보낸 선물들이 눈에 띄었다. 김대중과 노무현만 '대통령' 직함을 붙였고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등은 '남조선 집권자ㅇㅇㅇ'로 표기된 것도 특이했다. 지난 2002년 5월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던 박근혜 현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선물한 도자기 보석함과 삼성 전자제품도 있었다. 기업인으로는 김우중 대우그룹 창업자가 전한 선물의 가짓수가 많았으며 에이스침대 창업주가 전한 가구 세트는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안내원은 "회장님은 정규 생산라인을 3개월이나 중단하고 이 선물을 수작업으로 세심하게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국가선물관처럼 북한이 '강성대국원년'으로 선포한 올해에 맞춰 문화.레저.편익시설들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평양민속공원도 올해 4월 개장한 대표적 문화시설. 대성산 기슭 안학궁터 옆 60만평 부지에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한반도의 문화재 및 유적들을 실물 또는 축조모형으로 재현한 야외 역사박물관이다. 여기에 한국의 민속촌과 같도 있어 전통음식 전통놀이 등을 즐길 수 있게 해놓았다. 고구려.고려.조선의 궁궐 석가탑.다보탑.석굴암.거북선 등도 실물 크기로 재현되어 있다. 걸어서 구경하자면 하루 종일 걸릴 듯했다. 학생들에겐 역사교육 장소로서 관광객들에겐 한반도의 역사를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는 시설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일행 중 한 명이 "통일 되면 남북의 이런 좋은 시설들을 서로 함께 이용하고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나"는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문화 시설 외에도 대규모 레저.편익 시설도 줄줄이 개관했다. 가장 최근엔 지난 11월 초 대동강 기슭에 세워진 종합문화후생관인 '류경원'이다. 하루 7200명을 수용하다는 이 시설은 사우나.이발미용.안마.체육치료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며 류경원과 함께 인민야외빙상장 롤러스케이트장 등도 개장했다. 요즘 북한에서는 전국적으로 롤러스케이트가 유행이라 전용 시설이 전국에 마련되고 있으며 평양 곳곳의 공터에서 이를 즐기는 청소년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평양 창전거리에 들어선 '해맞이 식당'도 수퍼마켓과 각종 식당 등이 들어선 최신 편익시설 중 하나다. 지난 7월 개장한 '릉라인민유원지'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와 부인 이설주가 팔짱을 끼고 등장해 유명세를 탔던 곳. 김정은 제1비서가 롤러코스터인 '회전매'에 탑승해 즐거워 하는 장면이 세계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유원지는 주민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오후 6시에 개장한다고 한다. 인기가 폭발적이어서 1주일 정도 앞서 예약을 해야한다고 한다. 입장료가 북한 돈으로 2000원인데 평양의 어느 여종업원의 월급이 2500원이라 했으니 보통 주민들이 쉽게 즐기기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은 유원지와 함께 개관한 '곱등어관'에 들렀다. 곱등어는 돌고래다. 북한에서 돌고래쇼장은 처음이다. 안내원은 "평양과 남포를 잇는 수송관을 만들어 항상 신선한 바닷물을 공급하고 있다"고 했다. 돌고래쇼에 앞서 남녀 사회자가 무대에 나와 "김정은 지도자의 세심한 배려로 곱등어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게 3개월 만에 조련이 완성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같은 놀이.편익 시설은 평양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잇따른 레저.편익 시설 개설에 대해 한 북측 인사는 "인민 생활 향상이라는 최고 지도자의 관심 속에 추진되는 국가적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선군정치와 자연재해 등으로 식량난을 겪어야 했던 최악의 상태에서 벗어나 주민생활이 서서히 나아지고 있다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평양=이원영 기자

2012-11-21

[新북한을 가다-6, 내가 만난 북녘 동포들] "거, 지방방송 끄시라우" 조크에 빵 터지다

일정 동안 통일 토론회에 참석한 미주 대표단 아홉 명과 북측 안내원 한 두명 수행 사진기자와 비디오 기사가 대체로 함께 중형 버스로 이동했다. 일행 중 처음 북한에 간 이가 다섯 명이었으니 보는 것마다 신기했고 묻는 것도 많았다. 버스는 항상 와글와글 잡담으로 가득했다. "잠깐 거기 지방방송 좀 끄고 여기 좀 보세요." 우리팀 리더가 전달사항을 위해 주목을 원했다. 별말 없이 앞을 보고 있던 북측 안내원이 귀엣말로 묻는다. "거 지방방송 끄라는 게 뭔 소립네까?" "잡담 그치고 주목하라는 뜻이지요. 남조선에서는 흔히 쓰는 말이요." 안내원은 소리를 죽이며 큭큭 거린다. 한참 가다가 버스 앞쪽에 있던 안내원이 뒤쪽을 바라보며 일어섰다. 뭔가 전할 말이 있는 듯했다. "거 지방방송 좀 끄시라우." 우리 일행은 폭소가 빵 터졌다. 일행 중 한 명이 보탰다. "북조선엔 지방방송 없잖아." 또 한번 요절복통으로 버스가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간간이 '과일남새상점'이라고 적힌 상점이 보였다. '남새'는 '채소'에 해당하는 순수 우리말. 일행 중엔 열 살 남짓해 미국에 온 1.5세 목사가 있었다. 호기심 많은 그는 북측 인사들과 함께 어울린 자리에서 '남새'에 관한 고백(?)을 했다. "나는 북조선에서 왜 '남'쪽에서 날아온 '새'를 잡아서 팔까 그걸 어떻게 알고 잡을까? 남쪽 새들은 특별한 맛이 라도 있나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북측 인사들이 배꼽을 잡는다. 웃음을 겨우 진정시킨 북쪽 인사들은 "이거 사람들한테 얘기하면 포복절도할 겝니다. 지금까지 들은 유모아(그들은 유머를 이렇게 말한다) 중에서 최고로 웃깁네다." 말이 통하니 이렇게 웃음보도 같았다. 생전 처음 가는 낯선 나라 사람들과 이렇게 소통하며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 일행들은 7박 8일간 여정을 거치며 북쪽 주민들을 틈나는 대로 만났다. 다들 "이 사람들 참 순진하다"는 느낌을 전했다. 낯선 사람을 무턱대고 믿었다간 낭패 보기 십상인 자본주의 생태계를 경험해보지 못해서일까. 처음 만나는 사이인데도 속 얘기를 툭툭 꺼내놓기도 한다. 함께 사진 찍자고 하면 거리낌없이 응한다. 가족들이 모여 있길래 "모여 보세요 사진 하나 찍을게요" 했더니 군말없이 모여 포즈를 취한다. 이 사람들 왜 이렇게 경계심이 없나 싶었다. 말 하는 데 별로 주저함도 없고 말주변도 좋았다. 어릴 때부터 사상교육을 받으며 발표력을 키운 덕이 아닐까 싶었다. 말을 붙이면 "남조선에서 오셨습니까?"라고 물어보는 경우도 많았다. '재미동포'라고 하면 "아 그렇습니까. 잘 오셨습니다. 세계 어디에 살든 다 한민족 아닙니까. 요즘은 중국동포들도 많이 오십니다. 우리 조국은 동포들이 오시면 극진히 모신단 말입니다. 통일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20대 여성) 북한에는 노동당 기구로 해외동포원호위가 있어 정책적인 부문을 담당하고 행정부처로 해외동포사업국이 별도로 있어 관광 안내 등 실무를 맡는다. 토론회는 '고려동포회관'에서 열렸다. 해외동포들을 매우 잘 대접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조국' '통일' '동포'란 말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액센트를 주며 대응했다. 이쪽에서 먼저 그런 말을 꺼내면 반색하는 빛이 역력했다. "이번에 해외동포 통일 토론회하러 왔습니다"고 하면 다시 한번 쳐다본다. "아 그렇습니까. 좋은 일 하십니다. 어제 테레비에서 토론회 보았는데 그분들이시군요." 북쪽 사람들과 말문을 틀 때 이런 단어를 먼저 꺼내면 대화를 이어가기가 훨씬 쉽겠다는 나름대로의 노하우도 터득했다. 조국과 김일성 주석에 대한 확신을 드러내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탈북자들은 자기만 잘 살겠다고 조국을 배반한 사람들 아닙니까. 자본주의에서 살기 힘들어 다시 돌아온 사람도 많습니다. 조국만한 데가 어데 있갔습니까." (20대 상점 점원) 평양 곳곳에 '내 나라 제일로 좋아' '세상에 부럼 없어라'는 슬로건이 자주 눈에 띈다. 북한 주민들에게서 언뜻언뜻 비치는 자부심도 이런 구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숙소 인근 '아리랑'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중 북측 관료가 마주 앉아 있던 최재영 목사에게 단호한 어투로 이런 말을 했다. "목사님 목사님에게서 예수님을 떼어 낼 수 있습니까? 없지요? 이슬람교 믿는 사람들한테서 마호메트를 떼어 낼 수 있습니까. 없죠? 마찬가지로 저나 우리 인민들한테서 수령님과 주체사상을 떼낼 수가 없습니다." 김일성 주석을 경외하는 것과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것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체제와 이념은 그들과 우리의 사고를 많이 다르게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껍데기를 벗겨 보면 현실에 부대끼며 살고 있는 그들이나 우리들이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평양=이원영 기자

2012-11-20

[新북한을 가다-5.관광객 유치] "북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여행지?"…

외화벌이 위해 해외 관광객 적극 유치 '추억여행 즐기자' 중국인들 대거 몰려 거기 어때요? 여행 할 만해요? 볼 거 있나요?" "무섭지 않나요?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잖아요." "개인 여행 못하죠? 배낭여행 같은 거…." 기자의 북한 방문 르포 기사를 보고 독자나 지인들의 문의가 많다. 한편으로는 가보고 싶은 생각도 드는데 아직은 불안한 마음이 들어 선뜻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겠다고 한다.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자유로움'이다. 낯선 곳에 가서 마음대로 돌아다녀 보고 이색 체험도 해보고 지도를 들춰가며 행선지를 옮겨 보고…. 여행은 그런 '불편한 자유로움'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 그런 기대를 안고 북한 여행을 떠난다면 적잖이 실망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정해진 코스와 숙소 외에는 자유 행동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과 자유롭게 어울릴 시간도 갖기 힘들다. 강제로 제한하기 보다는 안내원과 함께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그런 기회가 잘 오지 않는다. 숙소에 돌아온 뒤엔 안내원이 '안전'을 이유 외출을 만류하는 게 보통이다. 기자는 '기사 욕심' 때문에 틈틈이 시간을 활용해 다양한 주민들을 만나고 거리도 돌아다녔다. 일반 관광객이라면? 아마 할 수는 있겠지만 엄두가 안나 포기하기 마련이다. 숙소-여행지만 시키는대로 다니면 별로 탈날 일도 없다. 그래서 북한 여행은 '불편한 자유로움'보다는 '제한된 편안함' 쪽에 가깝다. 어딜 가나 안내원이 동행해 척척 알아서 해주니 혼자 헤쳐나가는 보통의 해외여행처럼 골치아플 게 없다. 북한이 '외부 바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해외 관광객 유치에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역 제재 금강산 관광 중단 등으로 막힌 '외화벌이'의 중요한 대안이 되기 때문. 실제로 'North Korea Tour'를 검색하면 관련 사이트들이 10여개 이상 뜬다. 북한의 국가관광총국에서 해외관광객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평양 거리에서 안내원과 동행하며 길을 걷는 서양인들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선물가게에서도 유럽.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서양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스웨덴에서 왔다는 관광객 중 한 명은 "북한은 세상에 가장 위험한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자유 여행을 하지 못해 아쉽지만 호기심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색적인 곳"이라고 했다. 학생들의 기예공연이 열리는 만수대학생소년궁전에도 외국 관광객들이 붐볐다. 공연자들이 객석으로 나와 아프리카에서 온 듯한 흑인 한 명과 백인 한 명을 무대로 데려나가 조연으로 삼으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관광객들에 볼거리 즐길거리를 염두에 둔 것같은 대규모 시설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것도 관광 외화벌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규모 야외 역사박물관인 평양민속공원 능라인민유원지 곱등어(돌고래)관 대규모 테마레저파크인 류경원 등이 모두 올해 개장됐다. 관광객들이 주로 체류하는 평양에 문화.레저 시설을 확충해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의 수요를 맞추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곱등어관에도 외국인들이 많았다. 북한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나라는 중국. 중국인들은 비자 없이도 관광이 가능하다. 지난 해 북한을 방문한 중국인들이 2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2009년 중국이 북한 여행 문호를 확대하면서 급증했다. 이들을 겨냥한 골프.등산.자전거 여행 상품 등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개혁.개방을 하기 전 60 70년대 모습을 간직한 북한 관광을 '추억여행'으로 부른다고 한다. 볼거리가 별로 없다는 관광객들의 반응을 의식한 듯 북한은 문화체험 관광쪽으로 비중을 높이고 있다. 집단체조.아리랑 공연.민속음식 맛보기.풍습 체험 등을 늘리는 이유다. 여행 경비는 싸지 않다. 미국에서 1주일 정도 가겠다고 하면 중국 항공료를 포함해 3500~4000달러는 잡아야 한다. 도보나 자전거 등 개인여행은 불가능하다. 아마 허락받더라도 안내원과 함께 가야 할 듯하다. 서양인들은 자유여행을 원하는데 왜 꼭 안내원을 붙이냐고 물어봤다. "우리도 왜 모르겠습네까. 그러나 아직 우리 조국의 시설이 불비하단 말입네다. 교통.도로.숙박 문제가 개인여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란 말입네다. 길을 잃거나 사고나기 십상인데 다른 나라 같으면 뉴스도 안될 것이 우리 조국에서 발생하면 세계적인 뉴스가 되지 않습네까. 그래서 안내원이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이 말입네다. 앞으로 조국이 발전하면 달라지갓지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여행지'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까. 민족애와 통일 염원이 있는 한민족이라면 북한 여행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애잔하고 벅찬 감동을 안겨줄 수도 있을 것이다. 기자를 포함해 이번에 초행으로 동행했던 4명(최재영.피터 안.노종국.배은영씨)도 그랬으니까. 평양=이원영 기자

2012-11-18

[新북한을 가다-4, 돈바람이 분다] "정치는 노동당이, 경제는 장마당이 지배한다"

일을 많이 하거나 장사를 해서 돈을 벌고 이 돈으로 좋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향유하려는 사람의 심리를 최고로 작동시키는 시스템이 자본주의다. 그래서 자본주의에서는 돈을 벌기 위한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고 여기에 낙오하면 힘겨운 삶을 산다. 부익부 빈익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가피하다. 사회주의는 이런 자본주의 병폐를 없애고 모든 국민들이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지향하겠다고 만들어진 사회 이념이다. 사회주의에서는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빈부격차 도시 슬럼화 자살 등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며 반자본의의 학습을 시킨다. 북한이라고 예외는 없다. 사회주의 이상사회를 내건 북한이지만 '돈의 위력'은 여기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지하경제의 상징인 장마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각종 기업소에서도 매출 신장과 인센티브 시스템이 가동되면서 자본주의적 경쟁 구도가 생겨나고 있다. 다양한 루트로 유입되는 물건들은 주민들의 소비욕을 자극하고 이를 위해 개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돈벌이에 나서고 있다. 의식주 기본은 배급으로 충당하고 받은 생활비로 관급 매장에서 물건을 사야 했던 예전의 북한식 배급제는 현재 평양 외에는 거의 작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이번 방문 기간동안 장마당을 볼 기회는 없었다. 요청을 했으나 일정 상 여의치 않다며 양해를 구했다. 서방에서 온 사람들에겐 '북한의 급속한 자본주의화'로 해석될 것이 분명한 장마당을 쉽게 보여주긴 어려웠을 것이란 짐작이 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사람들이 돈 벌고 싶어하는 욕구가 곳곳에 스며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선물 가게 등에서는 점원들이 상품을 적극 세일하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매출에 따라 생활비 차이가 난다"고 했다. 대동강변 등에는 군데군데 몰래 물건을 파는 모습도 보였다. 호텔 근처에서 서성거리다가 산삼이라며 파는 여성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각종 매장을 운영하는 기업소는 매출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제를 적용하기 때문에 손님을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도 있다고 했다.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과 호텔 간의 '냉면 경쟁'도 치열하다고 한다. 평양의 주요 호텔들은 외국인 관광객을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 각종 루트로 여행사나 담당 공무원들에게 로비를 하기도 한단다. "장마당에 가면 없는 물건들이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사고 싶은 것이 많은데 우리 생활비로는 맘껏 사지 못합니다. 요새는 장사하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도 많다고 합니다. 우리처럼 생활비 받는 사람들은 돈을 벌고 싶어도 별 방도가 없습니다."(20대 후반 여성) 사고 먹고 싶은 건 많고 월급은 정해져 있어 항상 빠듯한 형편임을 느끼는 게 그들이나 우리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숙소 주변에서 두 여성이 길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언성을 높이며 옥신각신 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살펴 보니 한 쪽은 물건을 건네고 한쪽은 돈을 받는 거래를 하는 것이었는데 물건 값을 놓고 티격태격한 것이다. 과자 종류인 것 같았다. 두 여성은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거래를 끝내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함께 걸어갔다. 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 개인 비즈니스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암묵적으로 허용된 장마당의 규모가 커지고 보편화되면서 이에 영향받은 개인 비즈니스가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장마당은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으로 배급이 끊어져 아사자가 속출하던 1990년대 중반부터 자생적으로 태동했다. 배고픈 주민들이 집에 있는 물건을 내다 팔아 식량을 구입하는 식의 장터가 곳곳에서 형성됐는데 당국으로서도 생존이 걸린 자생적 거래행위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런 형태가 커져 지금은 전국 200여곳에 장마당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북한에서는 '정치는 노동당이 경제는 장마당이 지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커졌으며 중국.한국.러시아산 물건들이 보따리상 등을 통해 대거 유입되고 있다. 배급제가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자생적인 장마당이 대신하게 된 셈이다. 북측 관계자들에게 장마당에 대해 여러 차례 물어보았으나 대답을 흐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반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선 장마당이 앞으로 북한의 개방을 앞당길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북한 당국으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민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평양 시내에 최근 몇 년 사이 상점들이 크게 늘어난 것도 '장마당 효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장마당에서 돈을 번 이들의 구매력이 커지고 수요가 늘어나면서 상점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돈은 인체의 혈액에 비유된다. 돌고 돌면서 생명을 불어넣듯이 북한에 불기 시작한 '돈바람'이 북한 사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평양=이원영 기자

2012-11-15

[新북한을 가다-3, 젊은이들의 초상] "성격차이요? 고거 이혼 잘 안됩니다"

결혼식 피로연장 춤과 노래로 흥겨워 하객들 차량 숫자 '멋진 결혼식' 잣대 "우리 인민들 밤 늦게까지 술 안마셔" 평양 시내 한 건물에서 음악과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뭘까. 노래소리가 나오는 2층으로 올라갔다. 결혼식 피로연이었다. 앞쪽에는 군복을 입은 신랑과 한복을 곱게 입은 신부가 앉아 있었고 옆으론 부모들이 자리 했다. 한창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무대에는 도우미로 보이는 유니폼 입은 여성이 흥겹게 몸을 흔들며 노래 하고 있었다. 하객들이 우르르 무대로 몰려 나왔다. 대체로 엉성한 막춤이었지만 표정은 한껏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아래 위 몸에 착 달라붙는 검정색 옷을 입은 여성이 남자들의 요구에 못이기는 척 하며 무대로 올랐다. 유연한 몸놀림에 환성이 터졌다. 음악은 신나는 트로트풍이었고 쉽게 따라부를 수 있을 것 같은 리듬이었다. 함께 구경하던 룸메이트는 "이 사람들 잘 노네"를 연발했다. 하객들은 얼추 100여명은 되는 듯했다. 남자들은 군인 복장이 많았다. 북한에서 직접 바라보는 피로연 장면을 놓칠 수 없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이방인임이 탄로나지 않을까. 특히 하객도 아닌 사람임을 알게 되면 문제가 커지지 않을까 불안했다. 옆에 있는 하객 테이블에서 나를 힐끗 쳐다보는 이도 있었다.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재미동포인데 너무 재미있어서 구경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여기 앉으시죠" 합석을 권했다. 술 한잔씩 해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분위기를 파악한 다음에는 사진과 동영상도 찍었다. 아무도 신경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북조선에선 연애 결혼도 많이 합니까" "그럼요 요즘은 중매결혼 점점 없어집니다. 연애결혼이 70~80%는 될겝니다." "웨딩 사진도 찍습니까" "결혼식 끝나면 두 지도자 동상이 있는 만수대 언덕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습네다." "오늘 하객을 보니 100여명은 될 것 같은데 여기도 하객들 많이 오도록 애씁니까." "그거 다 비슷하지 않갓습네까. 하객들 많이 오면 그 사람 위상이 높아진단 말입네다. 차가 많아 와야 합니다." 하객들을 많이 데려오기 위해 트럭이 동원되기도 하고 결혼식장에 얼마나 많은 차량이 주차되었냐에 따라 '멋있는 결혼식'이 좌우된다는 말도 했다. 하객의 규모 그것도 몰려든 차량의 대수로 위상을 보여준다는 말에 속으로 "거기나 여기나 똑 같군" 하는 생각을 했다. 피로연을 마친 신부는 화사한 노랑색 드레스로 갈아입고 신랑과 함께 밖으로 나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신랑에게 다가가 "재미동포인데 피로연 너무 재미있게 봤다. 기념 사진 하나 찍자"고 요청했다. 신랑은 선뜻 좋다고 했지만 신부가 부끄럽다며 손사레를 치는 바람에 함께 찍지는 못했다. 대동강변에서 만난 한 부부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서방세계에서는 이혼이 점점 많아져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북조선은 어떻습니까." "우리 조국에서는 이혼 잘 안합니다. 아니 잘 안됩니다. 습관적으로 폭력을 쓰거나 그러면 법원에서 허락할 수 있지만 성격차이 같은 걸로 이혼은 잘 안됩니다. 거저 그냥 참고 살아야지죠.(웃음)" "부부싸움도 자주 합니까." "고거 사람 사는 데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루는 저녁 식사 후 9시 쯤 됐을 때 안내원에게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술집에 가서 어울려 한 잔하고 싶으니 안내해달라고 했다.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 시간에 말입네까. 저기 거리 한번 보십시오. 캄캄하지 않습니까. 다 문 닫았습니다. 우리 인민들은 밤늦게까지 술 안마십니다." "아니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있을 텐데 그러지 말고 가르쳐 달라"고 했다. 안내원은 "다음 날 일해야 하기 때문에 밤늦게 술마시는 사람 거의 없다"고 했다. 잘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실망한 끝에 밤 10시쯤 룸메이트와 함께 신시가지인 창전거리로 나섰다. '해맞이 식당'이라는 간판이 들어왔다. 올라갔더니 영업 중이었다. 우리 식으로 치면 카페였다. 고급스러웠다.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이 앉았다는 자리도 있었다. 서너곳에 청춘남녀가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연인들이 소곤소곤 사랑을 나누는 서울의 한 조용한 카페과 구분하기 힘들었다. 서울의 질펀한 밤문화를 떠올리며 술과 함께 이야기꽃이 만발하는 어느 서민 술집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던 기자는 적잖이 실망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창전거리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고층 아파트가 화려하다. 관광객이라면 누구라도 카메라 앵글에 담게끔 신경을 써서 조명 장치를 해놓은 것 같았다. 평양=이원영 기자

2012-11-12

[新북한을 가다-2 평양의 출근길 표정] "우리 조국은 걷는 걸 장려한단 말입네다"

아침 5시 무렵부터 도심 곳곳에서 경쾌한 음악이 흘러 나왔다. 힘찬 하루를 독려하는 스피커음도 들린다. 통행이 많은 교차로에는 중학생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유니폼을 입고 행진곡풍의 곡을 연주했다.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양복이나 인민복 계통의 옷차림이 많아 색조는 단조로운 편이었다. 북측 안내원은 "우리 인민들은 무채색을 좋아한다 말입니다"고 했다. 출근 수단은 버스와 전철 자전거가 대종이었다. 개인 승용차는 예체능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나 조총련계 가족이 사준 경우 외에는 드물다고 했다. 개인 승용차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아 출퇴근 시간이라고 서방국가 대도시처럼 교통이 막히는 현상은 없었다. 버스는 대체로 낡았지만 전차식이 많았다. 출퇴근 시간엔 콩나물 시루였다. 정류장마다 길게 늘어선 줄이 보인다. 차량이 붐지지 않으니 평양 도심이지만 매연이 거의 없어 공기는 맑았다. 대중 교통망이 도로 구석구석까지 발달되지 않은 탓인지 버스나 전철에서 내린 사람들은 상당히 먼 거리를 걸어서 일터까지 향하는 모습이다. 출근.통학 거리가 길다보니 책이나 메모지 등을 들고 공부하며 걸어가는 풍경도 독특했다. 번잡한 교차로가 별로 없어 고개 숙이고 책 읽으며 걷는 데 별로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열심히 책을 읽으며 걷고 있는 학생을 잠시 세워 물어보았더니 영어 단어를 외고 있다고 했다. 버스에서 내려 30분 정도 걸어서 학교에 가고 있다고 했다. "우리 조국에서는 걷는 것을 장려한단 말입네다. 버스에 내려 40 50분 걷는 것은 보통입네다. 걷는 시간을 아껴서 공부한단 말입네다. 그래서 우리 조국에는 뚱보가 없습네다." 안내원의 설명이었다. 하기야 8일 일정 동안 뚱보로 보일 만한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5년 전 방북했던 일행 중 한 명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확실히 활기차게 변했다"고 했다. 출근길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여유와 결의가 읽혀진다고 했다. 옷차림과 말투가 다른 우리 일행이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말을 걸면 외지인임을 알았는지 손을 흔들며 웃음으로 응답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쏟아지는 길거리 표정이 신기해 연신 셔터를 눌러대도 우리를 쳐다보는 기색은 별로 없었다. 아마도 관광객들이 많아지고 있는 평양 거리에서는 이미 익숙한 풍경이라 여기는 듯했다. 여느 출근자와는 달리 '뻐스 기동대'라는 사인이 붙어 있는 버스에서는 막노동 차림의 노인들이 수십명 내렸다. 얼추 60대 이상으로 보였다. 손에 삽자루 등 공사 도구를 들고 있기도 했다. 우리 일행은 남루한 차림의 노인들이 '노동' 현장으로 가는 것임을 알고 안쓰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북측 관계자에게 "어째서 쉬어야 할 노인들이 힘든 노동을 아직도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제 어머니도 노동을 한다 말입니다. 집에 놀면 뭐 하냐고 합네다. 노인들도 힘만 있으면 소일 삼아 일을 하려고 합네다."란 말이 돌아왔다. 원해서 하는 노인 노동이니 딱하게 보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이었다.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의 '민생 챙기기' 행보가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평양의 아침 발걸음도 그를 닮아가는 것일까. 서니힐스고 엔지니어링 센터 오픈 '인민들' 직장문화는 북한의 직장 생활은 자유세계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개인이 원하는 직업을 마음대로 선택하거나 이동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개인의 학력과 성분.당성에 따라 당과 행정기관이 중앙계획식으로 직업을 정해준다. 한 번 직장이 정해지면 거의 평생 같은 직업에 종사하게 된다. 임금은 노동직이 사무직보다 대체로 많으며 의사.변호사 등 '사'자 직업이라고 보수를 많이 받는 구조가 아니다. 기자가 묵었던 호텔의 청소부는 남편이 교수라고 했다. 선물가게 여직원에게 월급이 얼마냐 물었더니 "2500~3000원 선"이라고 했다. 25~30달러다. 이전에는 당이나 행정기관의 관료가 인기 있는 직업이었지만 요즘은 외교관.무역종사자.외항선원 등 '해외물'을 먹을 수 있는 직종이 인기라고 한다. 모든 직장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총화'라는 것을 해 그날 성과를 자체 평가한다. 휴일은 직종과 지역에 따라 요일이 다르다. 평양=이원영 기자

2012-11-05

[이원영 기자 '新북한을 가다'-1] 기대 이상의 취재환경

평양 순안 공항에 고려항공 여객기가 착륙한 순간 밖으로 비치는 을씨년스러운 모습처럼 나의 몸과 생각도 오그라들었다. 창가로 비치는 모습은 여느 국제공항과는 달리 휑 했다. 군인인지 근무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정복 입은 사람들이 군데군데 정위치 해 있었다. 북한땅임을 실감했다. 일행은 내리자 마자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고려항공 여객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정복 입은 이들이 흘깃흘깃 훔쳐 보기는 했지만 제지는 없었다. 속으로 '어라?' 했다. 사실 토론회 참석 차 왔지만 내심 기자로서 욕심이 더 컸다. 김정은 체제 이후 변모하는 북한을 생생하게 취재하고 싶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전에 북한을 방문했던 기자들이나 여타 방북 인사들의 말을 들어봐도 북한에서 사진을 자유롭게 찍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국 심사장이 있는 자그마한 건물로 들어섰다. 새 청사를 짓는 동안 임시로 쓰고 있다고 했다. 건물 안쪽 벽 위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음을 보고 북한땅임을 실감했다. 일행들은 매 순간 첫 경험인지라(9명 중 5명이 첫 방북이다) 입국 수속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제지는 없었다. 이 정도라면 앞으로 기대 이상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겠구나. 다만 소지한 휴대폰을 모두 회수하고 출국할 때 돌려준다는 말에 엄연한 북의 현실을 다시 느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각 평양 시내 대동강변에 있는 숙소로 가는 길은 한국의 여느 중소도시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평양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평양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내 생애 가장 길었던 '북한에서의 8일'이 시작된 것이다. 공식 일정 사이사이 기자는 세상을 탐했다. 결혼식 피로연에 불쑥 들어가 구경하고 하객들과 사진도 찍었다. 책을 들고 차를 기다리는 학생들을 붙잡고 영어 공부를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물었다. 산삼을 사라며 몰래 우리들에게 접근한 강원도 출신 아이들에게 용돈을 쥐어주기도 했고 선물가게 여종업원이 장사가 안돼 울쌍인 사연도 들었다. 사진을 함께 찍는 데도 크게 꺼려하지 않았다. 사진 때문에 해프닝도 있었다. 첫날 일행 중 한 명이 남루한 모습의 괴나리 봇짐을 지고 일터로 향하는 노인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자 노인이 "왜 찍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안내원이 약간 역정을 냈다. "우리 인민들도 모르는 사람이 사진 찍어대는 거 싫어한다 말입니다"며 양해를 구했다. 한 일행은 예전에 북측 인사들로부터 "재미동포 재미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북측 관계자는 동포들이 이상한 사진만 인터넷 같은 데 퍼뜨리는 바람에 노이로제가 걸렸다는 것이다. 균형있게 보도해달라는 주문도 덧붙인다. 한 북측 인사는 사석에서 "우리가 아직 평화시기에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직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모기장을 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해해주셔야 합니다"고 했다. 뜻하지 않는 악선전에 활용될 것을 우려해 사진이나 주민 접촉 등을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허용하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진 촬영 주민들 인터뷰에 간섭이 거의 없었다. 안내원을 동행하지 않은 채 평양 시내를 다니기도 했다. 일행 중 이전에 방북 경험이 있는 이들조차 "이렇게 자유롭게 셔터를 누르고 북쪽 주민들과 거리낌 없이 얘기를 나눈 적은 처음"이라 했다. "북한이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예상과 달리 사진.인터뷰 취재가 비교적 자유로운 여건임을 확인하자 기자의 기대감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북한 입국까지북한 비자는 두 차례나 거부됐다. 북한이 떨떠름하게 생각하는 '조중동 신문' 기자라는 이유 때문인 듯했다. 나중에 들은 이유는 보수언론들의 '의도된 왜곡 보도'에 불쾌했던 경험 때문이란다. 통일 토론회에 중앙일보 기자가 참석하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 있다고 북측에 설득해 어렵게 비자를 받았다. 2010년 천안함 사건 후 경색된 남북관계에서 의외란 반응이 많았다.

2012-11-01

[교육의 창] 북한에선 걸으면서도 공부하는데

지금 미국과 한국은 대통령 선거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고 유럽발 재정 파탄의 위험이 강하게 나타나 후보간 논쟁이 경제와 재정 문제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양국의 공통 현상이다. 반면 교육은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동안 교육시스템 개혁에 대한 관심을 보여 미국 대선에서는 교육정책이 다소 이슈가 되고 있지만 한국 대선에선 교육정책의 부재라고 할만큼 별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다. 오바마가 역설하는 교육정책의 핵심은 교육에 성장모형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는 모든 학교가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수준의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학생과 학교가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수시로 평가하기 위해 학력 평가시험을 강화하고 달라진 수준에 따라 학교 선택의 폭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차터스쿨을 늘리고 교원성과급제도 실시하겠다고 역설하고 있다. 오바마는 이를 공교육에서 개혁을 통해 실현하려는 반면 롬니는 민간의 차별화된 교육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교육에서 정부와 민간의 역할에 대한 시각 차이가 있지만 두 후보 모두 교육이 아이들을 더 잘 가르쳐서 더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목적에서는 같은 정책 비중을 두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의 대선 후보들은 교육목적에 대한 정책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 대학등록금 인하 무상 의무교육 확대 등 교육과 관련된 복지정책에 매달리고 있다. 아이들을 더 잘 성장시키겠다는 목적보다는 공평한 분배라는 차원에서 똑같은 교육을 다같이 받게 하겠다는 수단에 집착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마저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해 한 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 교육에서 수준 차별화 성장 등의 단어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한국의 교육정책은 입시제도 뒤집어 엎기만 반복했고 사교육 시장은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 속에 나날이 커져만 갔다. 그 결과 악화일로의 교육 양극화로 폭발 직전의 유권자들을 달래는 말밖에 다른 정책 논의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며칠 전 한 선배가 북한을 다녀와서 최근 북한의 모습을 담은 흥미로운 사진들을 보여줬다. 가장 눈길이 간 것은 학생들이 손에 책을 들고 걷는 모습이었다. 북한에서는 교통수단이 많지 않아 학생들이 등하교에 30분이상 걷는 것이 보통이기에 걸으면서 공부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이야기다. 주로 영어 공부를 하고 있어 적대국가인 미국의 영어를 왜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영어는 미국어가 아니라 세계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최고 선진국 중 하나인 미국도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도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을 좀 더 뛰어난 인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심지어 북한마저도 과거의 전투적 구호를 대신해 세계로 나아가자는 구호 속에 학생들이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기 위해 잠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있다. 반면 모국의 교육정책은 안개 속에서 변죽만 울리고 있다. 한국 학생들이 타인의 성공을 모두 공평하지 못한 제도 탓으로 돌리는 핑계에 의탁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자녀 교육은 여전히 미주 한인들의 최고 관심사다. 미국내 주변인처럼 느껴지는 이민생활 속에서 아이들만큼은 주류의 심장부에서도 당당한 인물로 키우고 싶은 희망을 모두들 가지고 있다. 희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성적도 중요하지만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지 않는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2012-10-31

북한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이원영 기자의 新 북한 르포

북한이 꿈틀대고 있다. 사상강국 군사강국을 거쳐 경제강국 원년으로 삼은 2012년은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으로 북한이 강성대국에로의 진입을 선포한 해다. 2012년 10월 평양은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예전과는 크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본지는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급속하게 경색된 이후 한국 기자로는 처음으로 북한 취재에 성공했다. 지난 3일 평양에서 열린 10.4공동선언 5주년 기념 해외동포 통일 토론회에 참석한 것이 계기다. 기자는 9명 미주대표단과 함께 8일간 평양과 외곽 도시를 둘러보고 주민들과 비교적 자유로운 접촉을 가지며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 체제이후 변모하는 북한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었다. 전력사정도 좋아지고 차량도 많아지고 고층건물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불과 몇년 사이에 놀랍게 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앞서 방북 경험이 있는 일행들의 반응이었다. '잘 살아 보자'는 내용의 경제 슬로건이 즐비했고 사람들의 표정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물론 아직 곤궁한 북한 주민들의 삶이 한눈에 들어왔지만 배굶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북한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방사회에서 3부자 세습체제를 비판하고 있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젊은 지도자 때문에 사회 곳곳에서 활력이 넘쳐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실제로 김정은 체제 이후 릉라인민유원지 60만평 규모의 평양민속공원이 속속 개장되면서 이같은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아직 인터넷도 되지 않고 국가 독점 미디어에 의한 이념교육으로 주민들의 의식구조는 단층적이었지만 반자본주의 학습 탓인지 체제 우월성에 대한 자신감도 여전했다. 경제제재로 막힌 외화벌이를 적극적인 해외 관광객 유치를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도 보였다. 북한은 최근 인터넷 광고에 공을 들여 상당수 유럽 및 중국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평양 시내는 물론 인근 주요 관광지에서 관광객들을 다수 발견할 수 있다. 평양 지방 출신을 막론하고 주민들은 외부인들에 대한 경계심이 예상보다 별로 없었으며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가무를 즐기는 모습은 여전한 한민족의 핏줄임을 실감케 했다. 기자는 공식 일정 외에 비교적 자유롭게 주민들을 인터뷰할 수 있었고 사진도 제재없이 찍을 수 있었다. 한국기자로는 최초로 평양에서 열차로 신의주 압록강을 거쳐 출국하며 북한 시골 강토의 영상도 충분히 찍었다. 통상 가이드와 함께 정해진 코스만 돌고 사진도 제한적으로 허용하던 관례에 비하면 "많이 변했다"는 것이 방문단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북한이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 것 같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정은 체제에서 빠르게 변모하는 북한의 현재 모습은 이번 주부터 '이원영 기자의 新북한 르포'로 연재된다.

2012-10-28

"미키 마우스·백설공주 캐릭터 등장해도…북한, 개혁·개방으로 가는 것 아니다"

북한 김정은 체제가 최근 보여주는 이전과 다른 모습은 전혀 개혁, 혹은 개방된 것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지적됐다.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HRNK)사무총장은 28일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워싱턴 협의회(회장 홍희경) 15기 제 2차 정례회에서 강연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스칼라튜는 “김정은 체제 이후 북한에서 미키 마우스와 백설공주 등 디즈니 캐릭터가 등장하고, 리설주가 김의 행사에 동반하는 등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제하고 “그렇다 해도 그것은 절대 북한이 개혁, 개방으로 가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지도자 김이 등장했으나 아직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면서 “북한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개혁개방을 이뤄야 하나 그럴 경우 김씨 일가의 왕조는 멸망하기 때문에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북한이 핵도발을 중단하고 대남폭령행사를 중단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북한 주민에 대한 북한당국의 인권처우이다”고 강조했다.  평통은 올해 15기 두 번째 정례회를 열고 이종주 주미대사관 통일관의 통일재원 마련을 위한 통일항아리 행사에 대한 설명, 스칼라튜 사무총장의 강연 등의 일정을 진행했다.  이종주 통일관은 한국의 통일을 위한 준비과정에는 통일교육을 비롯해 통일재원, 통일외교, 탈북자 정착, 통일을 위한 법제도 정비 등의 5가지 준비과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가운데 통일재원 마련을 위한 실질 및 대국민 동참의식 조성을 위한 ’통일항아리’ 사업과 관련한 통일부 제작 동영상을 상영하면서 통일에 대비한 재원조성 이념을 워싱턴 한인사회에서도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례회에서는 또 메트로폴리탄 여성 합창단이 ‘그리운 금강산’과 미국 민요 ‘대니 보이’를 홍희경 회장의 선창으로 합창하기도 했다.  홍 회장은 말미에 오는 18일 한국 통일부의 천해성 차관보가 워싱턴을 방문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최철호 선임기자

201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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